강원도까지 오는 길은 그렇게 험하지는 않았다. 단지 지루했을 뿐이다. 도로를 밝혀주는 주홍빛 등을 연신 지나며 몇몇 화물차만 이따금 지나는 단조로운 넓은 도로를 계속해서 달렸다. 길고 긴 터널을 몇 번 지났는지 양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어서야 차는 휴게소에 잠시 멈추었다. 모친은 손에 따뜻하게 데운 싸구려 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부친은 잠에 빠진...
도사 양 가. 이쪽 세계에서는 유명하다는 뼈대 있는 집안. 그리고 양지원의 집안은 엄연히 따지면 종가와 가장 가까운 방계다. 그곳에서 양지원은 태어났다. 같은 날, 같은 시각, 미세한 차이로 먼저 세상의 빛을 보았다. 뒤따라 제 동생, 양우원이 태어났다. 부모는 양지원을 보며 웃고 양우원을 보고 울었다. 그것이 그들의 차이였다. 누가 먼저 태어났느냐, 그 ...
나는 턱을 괴고 샤프를 휘리리 돌렸다. 수업은 평소와 같이 그럭저럭 들을 만 할 정도로 따분하고 지루했다. 하품을 작게 하다 이준우와 눈이 마주쳤다. 이준우는 언제 눈이 맞았냐는 양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나는 멀뚱멀뚱 그를 보다 다시 칠판을 돌아보았다.
'찜찜한데….' 아직 서늘하고 축축한 뒷덜미를 괜히 쓸었다. 쓰러진 유월 선배, 온데간데없는 김귀신 선배, 그리고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는 나와 유월 선배를 살펴보고 있는 청비 선배.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이다. 청비 선배는 유월 선배의 이마를 짚었다. 유월 선배의 이마는 어느새 땀으로 축축해져 앞머리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서리야, 내 옆에 꼭 붙...
이유월. 6월에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성의 없는 이름. 그래도 이유월은 제 이름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늘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저를 보곤 했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옆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부산떨던 유월 선배가 내 팔을 턱 잡았다. "내가 잡은 게 소서리 맞나?" "네, 선배. 저예요…."
학교 2층에만 불이 켜져 있는 야심하다고는 할 수 없는 밤, 2층 동아리실에 자판을 타닥타닥 두들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환히 켜진 LED 등 아래, 구부정한 등만 봐도 피곤해 보이는 사람은 퀭한 눈을 하고 밝은 빛을 내뿜는 모니터를 보았다. 모니터 창에는 한글 파일이 켜져 있고, 그는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며 여러 오탈자 등을 수정했다. "……."
기나긴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장예준은 계속 제 목을 붙잡고 켁켁거렸고, 나는 그의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장예준은 계속 잔기침만 할 뿐 무언가를 뱉거나 토하지는 않았다. 그저 묽은 위액과 침만 그의 입가를 적시고 바닥에 떨어질 뿐이었다. "일단 나가면 니 보건실부터 가자." "괘, 괜찮아. 진짜로." "한 개도 안 개안아 보이는데. 니 다친 데 진...
액체 덩어리가 차츰차츰 형태를 띠더니 우리가 익히 아는 귀신이 되었다. 그 귀신의 피부는 역시나 아까 위에서 보았던 귀신처럼 불길한 주술 따위가 가득 쓰여 있었다. 벌벌 떨던 장예준은 어떻게든 내 쪽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서리야, 어떡해?"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흐른 지도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는 귀신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껌껌했고, 끝없이 이어진 복도 역시 잠잠했다. 양지원과 박주희는 돌아올 생각이 없는지 그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서 있는 아이들의 조용한 숨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청희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게 보였다. 어느새 정신 차린 김하윤은 먹통인...
"소서리! 우리 엘리베이터 타고 가자." "뭐? 걍 계단 타고 가면 되지." "뒤지겠는데 계단 탔다간 뻗는디." 청희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체육쌤이나 다른 쌤에게 걸렸다간 죽도 밥도 안될 것이다. 아니면 성격 더러운 2, 3학년 선배에게 걸리면 또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될 것이고. 큰 분란...
마스크를 쓴 학생이 어둠에 묻혔다. 동시에 사사가 부리는 귀신이 김귀신과 장예준에게 스멀스멀 다가왔다. 귀신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자 온통 새카만 어둠만이 보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목구멍 속에는 상어 이빨처럼 날카로운 것이 뾰족뾰족 솟아 날카로웠다. 장예준은 질겁하며 김귀신의 뒤에 딱 달라붙어 소리도 못 내고 벌벌 떨었다. "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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